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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3

피눈물 휴가를 가기 전부터 몸 상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혹시 몰라 했던 피검사에서도 콩팥 기능이 뚝 떨어지고 전해질 불균형이 나타나, 동료들은 혈액 샘플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였다. 혹시나는 역시나. 휴가 3일째 겨우 일어나 아침 7시 스트레칭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동생이 기겁한 목소리로 외친다. "언니 눈에서 피 나!" 황급히 손을 눈에 대서 확인해보니 축축하고 시뻘건 피가 묻어난다. 아찔하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직업이 의사인 나조차도, 머리가 하얘져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여긴 베트남이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 거울에 나를 비춘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피 나는 눈과 피묻은 손을 사진 찍는다. (신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 2023. 8. 30.
끝이자 시작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끝과 시작은 마치 기차의 분절처럼 네모반듯하게 분리될 것 같지만, 사실은 퍼즐처럼 잘게 나눠진, 실제로는 연속된 조각들의 모음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지난주에 모 병원 소화기내과 펠로우 송별회가 있었다. 작년 말 다쳐서 실려 왔을 때부터 따뜻하게 날 보살펴주고, 힘들 텐데도 묵묵히 빈 자리를 채워주었던 선배, 동료 펠로우들과 작별하는 자리였다. 함께 시작했지만 유일하게 남아,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동료들을 배웅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긴 나의 소회는 시작부터 울컥거린다. 1. 인생의 큰 변화와 시련을 겪었습니다. 2. 다친 저를 가족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신 덕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3. 내과 의사로서의 꿈을.. 2023. 3. 2.
함께 Together 예기치 못했던 합병증으로 재입원을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많이 약해졌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당장의 모호한 운명에, 인간으로서 무력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닳고 닳아 연약한 내면이 드러나 보이는 순간, 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원래 강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인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그중에도 자기 확신의 결핍과 끝없는 존재 증명 욕구에 시달리는, 그저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들 앞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한계, 나의 한계는 온통 하찮고 허무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약한 인간을 일으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또 다른 인간이다. 생각할 겨를 없이 닥쳐온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재미를, 그리고 가능성을 다.. 2023.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