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봄 을 최근에야 보았다. 2023년 연말에 개봉해 누적관객수 천삼백만이 넘은 영화다. 현 정권의 폭탄 같은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증원 발표 후 전공의들의 임시대의원총회가 새벽까지 이어지던 날이었다. 여러 모로 마음이 혼란스러워 견디기 힘들었던 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가 일었다. 파워 게임에서 밀려 정의와 원칙이 손쓸 수 없이 무너지는 과정이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의 정확한 진실은 알 수가 없으나, 역사가 말해주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었다.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배한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사실. Winner takes it all.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합동수사본부장 전두광(배우 황정민)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배우 정우성)이 대치하는 장면이다. 육군 본부를 버리고 모여든 지휘부를 대신해 마지막 희망이 된 이태신은, 겨우 104명 뿐인 장병을 데리고 반란 진압을 위해 출동한다. 전두광은 수적으로 밀리는 부대를 조롱하지만, 이태신은 투항하지 않으면 5분 내 발포 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포탄을 쏘게 되면 반란군 뿐 아니라 아군과 주변 민간인까지 초토화가 될 터 였다.
바로 그 때, 지하 환풍구에 숨어 있던 ‘국방장관’이 반란군에게 끌려온다. 반란 행위를 정당화하는 육군참모총장 구속 재가서류에 서명할 뿐 아니라, 서울 사수의 마지막 희망 이었던 이태신 마저 직위해제 해 버린다. 국방장관의 말 한 마디에 보직과 명분을 잃은 이태신은,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며 혈혈단신으로 철조망을 헤치고 전두광에게 향해 체포를 당한다. 그렇게 전쟁은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희망은 신군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같이 영화를 보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연주는 군인을 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고. 나는 되물었다. ”저 중 어떤 군인이냐고.“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군인 중, 나는 어떤 이와 닮았는지가 알고 싶었다. 욕망에 찌든 전두광? 신념으로 불리한 게임에 투신하는 이태신? 권력에 붙은 하나회? 아니면, 비겁하게 숨은 국방장관? 무엇보다, 앞으로 나는 저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혼란 스러웠다. 가장 후회 없고 현명한 선택이 무엇일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의료계 단체행동이 막을 내린 2020년 가을, 나는 업무에 복귀해 당직을 서면서도 홀로 부산, 대전, 대구 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치열하고 억울한 소송을 감내해야 했다. 다수의 허위 사실과, 욕설과 상처도 꾸역꾸역 삼켰다. 1심 재판에 참석하려고 휴가를 냈다가,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급하게 몽골로 승마 트래킹을 떠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외승을 가서 낙마하는 사고가 났다. 이로써 나는 한쪽 눈을 실명하고 7번 째 전신마취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전공의도 아니고, 환자가 되어 상황을 보자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 또다시 어린 친구들이, 철조망을 뚫고 나가는 ‘이태신’ 각각이 되는 현실이, 속이 상하고 화가 난다. ‘필수과 의사’의 처절한 삶, ‘필수과 의사’를 기피하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바꾸고 싶어 의료계에 투신한지도 어연 6년이 다 되간다. 의료 현장에서 봤을 때 당연해보이는 해결책들이, 오랜 시간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왜곡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육군참모총장이 이태신에게 서울을 수호하는 직위를 부탁하며 하는 이야기다. “내가 정치를 맡길 거면 이 장군 당신한테 왜 맡기겠소! …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군인 이태신에게 임무를 맡기겠습니다.”
의사로서, 의사의 임무만 다 할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올까.
의료계의 어린 이태신들은, 과연 누가 지켜줄까.
대한민국 의료의 봄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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