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조그마한 가정의학과 의원이 있었다. 우리 가족 주치의였던 원장님은, 늘 인자한 미소를 띠며 동네 사람들을 돌봤다. 할머니부터 손녀딸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족은 아플 때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 소식을 전하러 의원에 들렀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입학과 졸업, 그리고 마침내 의사가 되기까지, 나는 원장님과 오랜 시간 안부를 나누며 지냈다. 가벼운 건강 문제부터 무거운 삶의 고민까지, 우리가 나눈 모든 시간에는 따뜻함과 사려 깊음이 깃들어 있었다.
뒤늦은 사춘기와 공허함으로 방황하던 20대 초, “연주야 앞으로 뭘 하고 싶니?”라 물으며 날 지긋이 바라보던 원장님의 눈빛이 생생하다. 본인의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따뜻한 조언과 함께.
다정함이 담긴 깊은 눈에 위로받아, 나는 무기력한 우울을 이겨 내고 ‘의사’라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해 내과 전문의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 또래였던 원장님은, 유방암 선고와 투병 끝에,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지 못하고 끝까지 동네 환자들을 돌보다 돌아가셨다.
그래서일까.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쪽 눈을 잃게 되면서, 진로 고민에 빠진 내게 평소 의지하던 선배가 물었다. “연주야, 그래서 너는 뭐가 하고 싶어? “나도 모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돌아가신 원장님과 나의 꿈이 이어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 그리고 진심 어린 위로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꼭 무사히 회복해 순례길에 도전하겠다는 나의 꿈이, 또 다른 이의 벅찬 꿈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손미나 감독(작가, 유튜버, 아나운서)’의 산티아고 순례길 다큐멘터리 영화 ‘엘카미노 (El Camino)’를 보고 왔다. 어쩌면 너무 늦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벅찬 순례길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희망을 안고서.
’손미나 감독(작가, 유튜버, 아나운러)’의 산티아고 순례길 다큐 ‘엘 카미노 (El camino)’ 영화를 보고 왔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힘든 사연을 안고 산다는, 그래서 서로 연결되어 친절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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