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진료에 올 때마다 간단한 검사들을 한다.
진료 차트에는 좌안 LP (-) (Light perception, 즉 빛 감지 능력이 없는 상태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함)이라 적혀 있다. 아주 잘 보이게 쓰여 있지만 기계적으로 왼 눈을 가려보라는 검사자도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왼쪽 눈은 실명했어요. 불 비춰도 안 보여요.”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마음이 온통 다쳤었다.
안압을 잴 때는 더 난관이었다. 눈꺼풀도 감겨 있고 안구가 흐물흐물하니 측정이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내 안압을 잴 수 있었던 사람은, 단발머리를 한 솜씨 좋은 1년 차 전공의 선생님 한 명뿐이었다. 정상 안압은 10~21mmHg인데, 당시 열심히 눈꺼풀을 벌려 겨우 잰 왼쪽 안압은 2mmHg였다. 그 정도로 낮은 안압은 안 재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안압을 잴 때마다, 몇 차례의 삐빅거림 이후 검사자는 이렇게 묻는다. “저번에는 안압 재졌었나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대답한다. “제 눈 원래 잘 안 재져요.. 괜찮아요...” 라고. 환자가 검사자를 위로하는 웃픈 상황이다. 머쓱한 표정으로 진료 차트에 (-) 표시를 하고, 검사자는 나를 보내준다.
그런데, 오늘, 신기하게도 안압이 재졌다!!!
‘삐빅삐빅’ 소리만 날 뿐 재지지 않던 왼쪽 눈의 안압이, 드디어, 처음으로 재진 것이었다. 심지어 12mmHg라는 정상 수치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다음엔 기적 같았다. 뭉개져서 흐물흐물 해진 다친 눈이, 이제는 편한 상태가 됐구나 싶어 기특했다. 매번 안압계를 들고 당황스러워하는 선생님을 마주하는 것이, 심적으로는 꽤 힘들었던 나다.
같이 외래에 온 엄마는 그랬다. 연주가 다치기 전에는 몰랐는데, 눈이 두 개라는 게 참 힘들고 대단한 일이었구나 싶다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눈이 둘인 걸 보며 마음이 아팠을 엄마다. 나는, 하나를 잃었는데도 이렇게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엄마를 애써 위로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고생한 엄마와 왼쪽 눈을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삶에 담길 모든 풍경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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