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3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해 “서연주! , 할 것 없으면 같이 회진이나 돌자.” 오후 내시경이 끝나 무료하게 앉아 있던 내게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1년차 펠로우 말에는 다쳐서 환자로 입원해 있느라, 2년차 펠로우는 병동 백을 보지 않고 내시경만 하기에, 병동 환자를 본 지가 한참이나 된 것을 알고 하시는 말씀이다. “의사는 환자 너무 오래 안 보면 감 떨어진다.” “네? 네네.” 갑작스런 오더에 정신 없이 대답을 마치고, 명단 뽑을 새도 없어 노트와 펜 하나를 챙겨들고 급히 교수님을 따라 나선다. 꿈에서도 생각나던 중환자실 비밀번호를 까먹어 충격받을 새도 없이 “꾹꾹꾹꾹 (4670)” 버튼을 스스로 누르고 나를 이끄시는 노교수님. 환자와 말씨름을 하기도 하고, 또 걱정 말라 안심시켜 주기도 하면서 능숙하게 회진을 도시는 교수님의 모.. 2023. 6. 25. '따뜻함'이란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5배는 어른스러운 홍현이다. 사고 후 응급 수술받고 통증으로 헤매는 동안, 홍현이는 손수 만든 도시락을 병원까지 들고 왔으면서도 아파 보이는 날 배려해 아무 말 없이 돌아가 주었다. 아주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미안하던지. 거절에 서툰 나를 두고두고 배려하는 어린 동생의 깊은 마음은 날 오래도록 숙연하게 한다. 어리지만 어른 같은 홍현이는, 이번에는 환한 채광이 드는 자신의 공간에 나를 초대한다. 온종일 준비했을 것이 뻔한, (어쩌면 하루를 훌쩍 넘기는 고민과 노동이 필요했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정성 가득한 음식을 내온다. 사방의 따뜻함 속에서, 나는 사랑이 담긴 장어 덮밥을 꼭꼭 씹어 삼킨다. 난데없이 터진 울음은 이내 이어지는 깊은 대화와 유쾌한 웃음 속에 자취를.. 2023. 4. 10. 새해 새해가 밝았다. 2023년 검은 토끼해, 태어난 후 서른세 번째 맞이하는 새해다. 2022년을 돌아본다. 부천에서 당직 서며 맞이한 새해를 시작으로,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붕괴 직전인 의료 현장을 정부와 국회, 언론에 알리러 다녔다. 또한 코로나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고자 서울시-청년의사가 기획한 유튜브 라이브 채널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2종 소형 면허를 따고 바이크와 골프를 배웠다. 그러다 보니 가까스로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제는 전공의 신분이 아닌 전문의 신분으로 그리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돌아와 소화기내과 임상강사 수련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능력 있는 교수님들께 내시경 술기뿐 아니라 참된 인생 교육을 받은 충만한 시간이었다. 내시경이 익.. 2023. 1.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