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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4

기적 같은 이야기 성형외과 외래 진료실을 방문했다. 3개월 만이다. 작년 11월, 서른셋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안구가 파열되어 한 쪽 시력을 잃었고, 올해 1월, 부러진 얼굴 뼈를 붙여 둔 임플란트에 농양이 생겨 다시 입원했다. 올해 3월, 가까스로 의사 본업으로 복귀했으나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반쪽은 의사, 반쪽은 환자로 살며, 두 존재 모두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5월, 기적적으로 상태가 좋아져, 의사라는 본업으로 완전 복귀에 성공했다. “교수님, 저, 눈이 떠져요” 양쪽 눈을 모두 뜨고 깜빡이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전생에 좋은 일을 했나 보다”고 했다. 그토록 심한 사고 이후, 눈꺼풀이 다시 떠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고 했다. 감사.. 2023. 5. 18.
흉터 오른쪽 세 번째 손톱은 얼굴을 제외한 신체에 유일하게 남은 사고의 흔적이었다. 얼굴 뼈가 으스러지고 안구가 파열된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손톱을 제외한 팔다리가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당시 충격으로 흐물거리는 손톱이 걸리적거릴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불가피하게 닥친 아픔의 흔적을 어쩌면 본능적으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능과 효율이 떨어진 인간의 핑계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힘든 일은 담아 두는 것보다 돌파하고 지나가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가시밭길이라 한들, 살짝 찢기며 나아가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니까.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우주의 섭리에 따라 시간은 절대적으로 .. 2023. 3. 14.
생존 Survival 조각조각 나서 일부는 사라져 버린 내 얼굴 뼈. 안구 주변의 뼈들이 부서진 탓에, 그리고 코와 연결되는 점막 장벽들이 무너진 탓에, 내 좌측 얼굴과 코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균을 막을 재간이 없다. 30대의 나는 정맥 항생제의 도움으로 한 차례의 위기를 잘 넘어갔지만, 40대, 50대, 60대, 70대의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말은, 내가 앞으로 견디고 싸워야 할 대상이, 남은 한쪽 눈으로 보게 될 좁은 시야가 아닌, 언제 어디서 들이 닥칠지 모르는 세균들과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잔뜩 긴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삶. 감염 징후에 촉각을 세우고 너무 늦기 전에 알아채야 지킬 수 있는 삶, 앞으로 나에게는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30대에 생존.. 2023. 1. 21.
사고 소식 알리기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 이후, 이를 주변에 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아끼는 누군가는 “눈을? 눈을 다쳤다고? 그래서 어떻다고?”라고 반복이다. 끝내 ‘실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오열했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울먹이는 듯 한참을 말을 못 하기도 했다. 이토록, 한 사람의 인생에는, 참 믿기 어렵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사건 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조차도 믿기 힘든 이 갑작스러운 불행을, 타인에게는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했었다. 일단은 나 스스로 이 불행을 온전히 삼키고 견딜 수 있어야 했고, 그리고 나서는 겹겹이 쌓여있던 약속과 만남 들에 나의 갑작스러운 불참 사유를 전해야 했다. 다른 이들의 삶이 나의 갑작스러운 불행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엉키.. 202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