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4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 2023년을 넘어가는 연말, 나는 예상치 못한 벽에 가로 막혀, 또다시 한계를 마주하는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그간의 다양한 노력이 무색 하게도, 안구를 받치고 있는 티타늄 임플란트에 엉겨 붙은 염증이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기존 임플란트를 제거하고 다시 넣는 대수술을 감행 하기로 했다. 그토록 무서웠던 가짜눈알 에도 익숙해졌고,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다친 눈이 어느 쪽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시점이었다. 1월 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려 준비를 했었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혹시나 기술이 해결할 영역이 없을지 궁금했다. 솔직하게는, 구글, 애플 등 실리콘 밸리 굴지의 기업과 스탠포드, UCSF 등에서 일하는 동기들을 만나 시.. 2024. 1. 14. 벌써 일년 2023.11.6. 다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왠지 인생에서 기념(?) 아닌 기억해야 할 날짜가 하루 더 늘어난 기분이다. 막상 그 날이 되니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가 버린다. 삼십여년 두쪽 눈으로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한쪽 눈으로 쌓아갈 삶들이 차곡차곡 앞에 남았다. 1년 전을 돌이켜보면, 저 컴컴한 병원 건물 병실 한 칸에서 온갖 감정을 거쳤다. 몸에 걸친 얇은 환자복과 팔을 칭칭 감은 수액줄이 한편으로는 날 가둬두는 죄수복과 수갑 같았다. 창문 너머 코앞에 보이던 5분 거리의 자취방은, 당시에는 안개 속에 갇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지금 서 있는 병원 밖 삶도 치열하긴 매 한가지지만, 저 안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터무니 없다. 1년 간 안팎으로 참 고생하며 생존하고 성장해왔다.. 2023. 11. 12. 삶 Life, 아름다운 무기 지독하게 치료 받았다. 거짓말 안 하고 왕복 3시간, 막힐 땐 편도 3시간 까지 걸리는 거리로,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처음 한 달은 토일 가리지 않고 주 7일을 다녔고, 근무와 병행하면서는 그나마 주 5-6일로 줄여 다녔다. 체력이 약해지고 한 눈 운전이 서툰 나를, 부모님과 동생이 번갈아 태워 다녔다. 1시간 반-2시간 남짓 걸리는 치료시간과 왕복 소요되는 3-4시간을 합치면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했다. 가족들은 시간과 기회 비용을 기꺼이 감내해 주었다. 경치도 좋고 운동도 되니 좋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을 덜어주려 하는 말인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모든 것이 찐사랑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극한 희생과 헌신의 과정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거의 모든 끼니는 차에서 해결했다. 나 .. 2023. 5. 2. 피로 Tiredness 가 아닌 문제 Problem 거품뇨가 나왔다. 지금 먹고 있는 경구용 항생제 두 종류에 더해, 주사 항생제를 맞기 시작한 지 이틀째부터 그랬다. 내과 수련 기간에 썼던 항생제 중, 독하기로 유명했던, 그래서 환자들의 신장 수치가 행여나 올라가지 않을까 매일 피검사를 해야 했던, Glycopeptide 계 항생제를 추가한 탓일 테다.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내 몸이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여기서 더 망가지고 있는 건 어쩌면 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이다. 몸이 지쳐가는 만큼, 마음도 구석구석 지쳐간다. 그렇다고 푹 쉰다고 나아지는 종류의 피로(Tiredness)는 아니다. 이건, 끝이 보여야 해결되는 일종의 문제(Problem)이다. 아주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의사라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계속 “.. 2023. 2.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