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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피로 Tiredness 가 아닌 문제 Problem

by 윙크의사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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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Problem 에는 반드시 해결책 Solution 이 있다

거품뇨가 나왔다. 지금 먹고 있는 경구용 항생제 두 종류에 더해, 주사 항생제를 맞기 시작한 지 이틀째부터 그랬다. 내과 수련 기간에 썼던 항생제 중, 독하기로 유명했던, 그래서 환자들의 신장 수치가 행여나 올라가지 않을까 매일 피검사를 해야 했던, Glycopeptide 계 항생제를 추가한 탓일 테다.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내 몸이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여기서 더 망가지고 있는 건 어쩌면 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이다. 몸이 지쳐가는 만큼, 마음도 구석구석 지쳐간다. 그렇다고 푹 쉰다고 나아지는 종류의 피로(Tiredness)는 아니다. 이건, 끝이 보여야 해결되는 일종의 문제(Problem)이다. 아주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의사라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계속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대?” 혹은, “그러면 언제까지 해야 한대?”를 묻는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정도로, 모르고 예측할 수 없어 답답하다. 그리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괴롭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현재 가능한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기다리면서. 

 

세상 모든 문제가 그렇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해결되는 문제까지. 내과 수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교육받는 것은, ‘문제 목록(Problem list)’을 찾아내 정리하는 일이다. 환자의 삶을 온통 아프게 파고든 증상, 징후, 검사 결과들 사이에서, 진짜 문제들을 발견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 빠짐없이, 그렇지만 간결하게 문제 목록을 찾아내는 능력이 훌륭한 내과 의사의 제 1 덕목일테다.

 

또, 내가 수련 기간 중요하게 교육받고 깨달은 한 가지는, 환자의 문제에 대한 최선의 치료 방법이, 단순히 최신 의학적 소견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환자의 치료 의지, 경제적 상황, 직업의 종류, 자택과의 거리, 그리고 돌봐줄 보호자의 유무 등이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질병과 달리, 삶은 단편적이지 않은 탓이다. 

 

나의 문제 목록에지쳐 있는 마음 하나 추가되었다. 환자들의 문제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내과 의사로 훈련받은 덕택에, 본인의 문제 또한 틀에서 보고 정리할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능력이다. 터널 끝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생각보다 좁고 멀고 험한 탓에, 당분간은 발산하는 멀티 태스킹의 효율 대신에 집중하고 수렴하는 스킬을 장착하기로 한다. 잔뜩 웅크린 자세가 어색하긴 해도, 어쨌든 나는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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