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의 소화기내과 펠로우 수련 과정이 끝이 났다. 얼굴뼈가 깨지고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겪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힘겹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섯 번 반복된 전신마취 수술과 세 번의 치열한 복귀, 두번의 거절 끝에 장애인으로 등록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참 고집스럽고 독한 과정이었다.
1년간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2년차로 남아 후배들과 또다른 1년을 보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택에 책임지며,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이었다. 그 끝이 어떨지 마음 속으로 백번도 넘게 그렸지만, 지금과 같은 혼돈은 예상하지 못했다. 남겨진 이도, 떠나야 하는 이도, 못내 아쉽고 참담하다.
‘이제 어디로 가니?’ 라는 질문에, 곧 다시 환자복을 입을 나는 말문이 막힌다. ‘전 수술방으로 갑니다.’ 그렇다. 나는 이 불안한 시기에 곧 일곱번 째 전신마취 수술과, 지겨운 회복 과정을 또 겪어나가야 할 터였다. 누가 그랬다. 이쯤 되면, ‘서연주 ETF’ 인버스에 몰빵 해야겠다고. 너는 어쩜 매번 철썩 거리는 파도의 중심에 있냐고.
치열 했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방향을 몰라 불안 했을지 언정, 순간은 모두 최선을 다했으므로.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라 생각한 ‘끝’에 막상 와보니, 상당히 많은 것이 그대로다 싶다. 한쪽 시야도 어느덧 적응되고, 돌아오기 두려웠던 병원도 익숙해지고, 의사 가운도 여전히 잘 어울린다(고 내가 좋아하는 간호사 샘이 그랬다).
2년이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차곡차곡 응원과 보살핌을 쌓아주었나. 건강이 우선 이라며 배려해주시던 교수님들, 치료를 받는 동안 흔쾌히 일을 나눠주던 동료들, 눈이 부실까 내시경 불빛을 손으로 막아 가려주던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이들을 전쟁터 같은 병원에 두고 가려니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왠지 미안하다.
이제 당분간, 내가 최선을 다할 역할은 ‘환자’다.
솔직히, 언제 의사 가운을 다시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의사 가운을 입게 될 지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주어진 ‘환자’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고민하다 보면, 모두가 건강한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때 최선을 다할 또 다른 역할이 내게 주어져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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