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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일기

필수 의료, 의료인의 삶과 존엄에 그 해답 있다

by 윙크의사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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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중증 의료진들의 삶과 존엄에 대해서도 조명해야 한다.

인권 (Human rights),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인권을 제도화 한 것은 혁명을 통해 근대시민사회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다. 여기에는 생명 및 건강에 직결되는 필수보건의료 서비스를 수혜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대한민국의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인간의 기본권과 평등성을 기반으로 누구나 저렴하고 질 좋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립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심지어 재외국민, 국내 체류 외국인까지도) 대한민국 내에서 필수보건의료 혜택을 받는 데 큰 제약이 없다.

​문제는, 필수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관련 분야 의료인들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생명과 직결되는 '바이탈 과'의 전공의 지원 미달 소식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사명감으로 필수 의료 분야를 선택한 기존 의료인마저 하나둘 지쳐 떠나는 현실이다.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분만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 붕괴는 예방할 수 있는 사망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비친다. 지방에서 분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가 구급차로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은 점점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필수 의료 분야는 희생이 필요하다. 촛불처럼 사그라드는 연약한 생명 하나를 붙잡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구와 삶을 내려놓고 곁을 지키는 여러 타인의 돌봄이 필수적이다. 개인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양하겠지만 보건의료 분야의 3D인 필수 의료를 선택하는 이들은 편안하고 윤택한 삶보다는 험난해도 의미 있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생명과 맞닿아 있는 순간은 어느 하나 가볍고 하찮은 것이 없고, 대체 불가능한 깨달음과 감동을 주기에, 그들은 당장의 안락함 대신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용기 있게 선택했을 것이다.

 

존엄 (Dignity), 한 개인으로서 가치를 존중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

 

의료인 개인은 아픈 이를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증명한다. 개인적으로, 필수 의료의 붕괴는 의료인들의 이 '존엄성'이 무너지며 빠르게 가속되었다고 생각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몸이 아픈 약자의 나은 삶을 위해 의료인은 근본적으로 선한 희생과 노력을 행한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는 그 방향이 더욱 선명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의사도 환자가 잘못되기를 바라거나 기대하고 진료에 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는 필수 의료에 몸을 던진 의료인들의 진심과 선한 의지를 자꾸 의심하고 꺾는다. 구멍 난 시스템과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개인의 더 큰 희생만을 채찍질하고, 끝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구속과 형사 처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대 목동 신생아 사망 사건도, 강남세브란스 소화기내과 의사 법정구속 사건도, 이비인후과 전공의 형사처벌 사건도 마찬가지다.

​끼니와 휴가를 챙기지 못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은 차치하더라도 삭감과 심평의학에 시달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처방할 수 없는 현실, 흉기로 위협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최소한의 신체적인 안전조차 담보할 수 없는 진료 환경 속에서 어찌 필수 의료 분야 의료진의 존엄성과 자존감이 지켜질 수 있을까. 아니 어찌 필수 의료 분야에 발붙이고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내 주변에 흉부외과 수련을 포기했던 친구가 하나 있다. 심장 수술이 좋은데, 그 삶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계속되는 당직과 응급 상황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수면제를 먹어야 했고, 번아웃과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이 너무 하고 싶었다고 했다.

​흉부외과 수련을 그만두고, 친구는 로컬 병원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했다. 얼마 전엔 같이 바다 서핑을 갔는데, 이 친구가 이걸 그렇게 좋아할지 차마 몰랐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바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그 아이를 보며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왜 바이탈과 의사들은 저 두 가지 삶을 병행할 수 없는지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시 흉부외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고 한다. 힘들어도 그냥 하고 싶다고 한다. 대견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서핑은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빠른 시일 안에 그 친구의 일상과 삶, 그리고 존엄이 지켜지는 진료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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