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끝과 시작은 마치 기차의 분절처럼 네모반듯하게 분리될 것 같지만, 사실은 퍼즐처럼 잘게 나눠진, 실제로는 연속된 조각들의 모음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지난주에 모 병원 소화기내과 펠로우 송별회가 있었다. 작년 말 다쳐서 실려 왔을 때부터 따뜻하게 날 보살펴주고, 힘들 텐데도 묵묵히 빈 자리를 채워주었던 선배, 동료 펠로우들과 작별하는 자리였다.
함께 시작했지만 유일하게 남아,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동료들을 배웅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긴 나의 소회는 시작부터 울컥거린다.
1. 인생의 큰 변화와 시련을 겪었습니다.
2. 다친 저를 가족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신 덕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3. 내과 의사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한 병원입니다. 사고로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4. 그동안, 저로 인한 공백을 묵묵히, 또 기꺼이 채워 주신 선배, 동료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이후 1년간 함께 찍었던 사진 인화 용지와 분과전문의 자격증을 담을 액자, 그리고 손수 쓴 편지를 한명 한명 전해주다 보니, 끝은 어느새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비행기의 무사 이륙보다 무사 착륙이 어려운 것처럼, 내게는 시작에 앞선 괜찮은 끝맺음이 늘 더 어렵다. 잘 맺은 끝의 결론에 서야 매끄러운 출발이 가능할 거라는 환상일까, 혹은 포기를 편집적으로 싫어하는 악바리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제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기능하길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매년 송별회와 홈커밍을 열어주시는 교수님들을 보며, 사고 이후 혼란스럽고 약해진 마음을 정리한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아끼는 마음으로 조언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동안 두 차례나 좌절되어 버린 복귀를, 오는 3월부터 조심스레 다시 도전해보려고 한다. 자신에게 떳떳한 마무리를 해야, 충만한 쉼과 출발이 가능한 딱딱한 인간이기에 그렇다. (물론 건강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겠지만, 부디 내년 이맘때는 웃으며 벅찬 끝과 시작을 맞이할 수 있길! (당분간은 복귀와 치료를 병행하는 것만으로 꽤나 벅찰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건강히 제자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 결론은 모두 날 괴롭히는 나의 슈퍼에고 때문이다ㅋ 탓 아닌 척 탓하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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