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빛을 잃은 눈이 결국 피고름까지 쏟아내고 나서야, 그래서 결국은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나서야, 주인은 정신을 차린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거늘, 자꾸 스스로를 몰고 가는 버릇 때문에 상처는 결국 덧나고 말았다. 내성균이 자라서, 현존하는 항생제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도 없었다. 결국 코뼈를 뚫고, 고여 있는 고름이 흘러 나갈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부서진 안와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금속 임플란트 안쪽으로 고름이 차 있는 상황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외부 물질을 빼고 깨끗하게 씻은 뒤, 새로운 임플란트를 넣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지지하던 부위가 워낙 넓다 보니, 빼버리면 얼굴 형태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어 택한 차선책이었다. 제발 그다음의 경우는 오지 않길 바라며, 주인은 몸이 회복될 수 있도록 휴식기를 조금 더 갖기로 한다.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라, 그리고 한창 달려 나갈 청춘의 나이인지라, 쉰다는 결정이 무섭고 어색하기만 하다. 모두가 쉬어야 한다고 배려를 해 주지만, 막상 본인은 쉽게 쉬지를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나를 꽁꽁 묶어 놓고 싶을 텐데도, 오히려 걱정을 붙들어 맨 채 딸을 놓아줬던 엄마의 심정이 안쓰럽고 아프다. 도대체 나는 왜 이리 불효를 저지르는 딸일까, 한참 고민을 한다.
회복될 때까지 길게 휴직하겠다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 나는, 내시경실 자리에 앉아 본인의 수술 동영상을 클릭해 열어 본다. 시뻘건 피가 난무하는, 코점막과 뼈를 깨고, 안구 아래에 들어 있는 금속 플레이트를 드릴로 뚫어 관을 넣는 영상. 내가 그 영상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고는, 내시경실 간호사 선생님은 “선생님, 왜 이걸 보고 있어요. 보지 마요~” 라며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내 얼굴 안쪽에서 일어난 일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나를 낱낱이 분해하고 해체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전부 알아내야, 그래야 다음을 계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지 못하고서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느 순간 나는,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위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회전목마.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뀔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데, 나는 여전히,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심지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방향조차 몰라, 온통 어지럽기만 한 요즘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회전목마에서 내려 잠시 쉬기로 했다. 다시 올라탈 수나 있을지, 타고 있던 목마를 알아볼 수나 있을지 두렵고 자신이 없지만, 일단은 좀 멈춰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몸과 마음이 충분히 회복되면,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어쩌면 내가 진짜 타고 싶은 건, 회전목마가 아니라, 후룸라이드 일 수도 있으니까.
'윙크의사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0) | 2023.10.31 |
---|---|
수현이 (0) | 2023.10.14 |
처음인 듯 처음 아닌 해외 여행 (0) | 2023.09.18 |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0) | 2023.09.10 |
피눈물 (0) | 2023.08.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