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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작은 거인, 엄마

by 윙크의사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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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밑 손 끝에 닿을 만큼 길었던 머리를 잘랐다. 자꾸 엉켜서 불편하기도 하고, 그걸 보는 엄마가 맘이 편치 않아 해서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사고 소식을 듣고 강원도로 내려와 피투성이의 나를 만난 엄마는,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내 손을 가만히 따뜻하게 잡았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실려가는 구급차에서 내내 엄마는 그렇게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보다. 엄마가 작은 거인 처럼 느껴진 것은.

 

 키가 작은 나보다 5cm는 더 작은 엄마인데, 어쩜 그렇게 커 보이는지. 병원 신세를 지는 내내, “내 딸은 내가 지켜야지.” 하며 휠체어를 밀어 주는 엄마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엄마는 그 흔한 원망이나 눈물 섞인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렇게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랬던 엄마지만, 한두차례는 울컥하며 울음으로 목이 메인 소리를 내곤 했다. 어쩌다 SNS 페이지에서, 두 눈이 모두 건강하던 시절 찍은 내 영상을 보셨었나 보다. 잘 키워냈다 생각했던 금쪽 같은 딸이, 서른이 넘어 갑자기 한쪽 눈을 잃게 되다니. 예상치 못한 사고 후, 곁에 있는 딸에게 슬픔을 얹어주지 않으려 꾸역꾸역 참았을 엄마는, 건강했던 시절의 나를 보는 것이 슬프고 힘들었나 보다. 엄마가 참지 못해 울컥하던, 그 짧은 찰나 전에는, 그 심정을 차마 헤아리지 못했다.

 

작은 거인 같은 엄마는, 이렇게 종종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이제 그만 독립 할게요. 라고 선언했을 때, 내가 상상한 답변은 여러 가지 연유가 담긴 거부였다. 이를테면, “사고칠까봐, 돈이 많이 들어서, 걱정되서, 안되겠다.” 등의. 하지만 엄마는 “외로움 많이 타는 네가 혼자 살면 더 외로워 할까봐.” 라는 따스한 염려를 담을 뿐, 내가 독립을 해 나가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도와주셨다. 

 

스물 초반 철없던 시절에도 엄마 마음을 참 아프게 했었는데, 서른이 넘어서도 사고를 치니 참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당분간은 엄마와 보내는 회복의 시간에서 큰 의미를 찾으려 한다. 나의 최선의 회복은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다친 나를 곁에서 돌보고 힘써 준 엄마를 포함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기에.

 

병원 생활 내내, 큰 힘이 되어 준 나의 기둥, 작은 거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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