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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by 윙크의사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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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당 Play Dang

서른셋 내과 의사의 좌충우돌 인생 즐기기 함께 하는 따뜻한 세상을 지향합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삶은 여전히 아름다운 교훈을 줍니다.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 개인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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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쪽 눈을 잃고도 유튜브를 찍어 올리는 것을 보며, 혹자는 이상하다거나 살짝 돌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퇴원하는 날, 마지막으로 들렀던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선배 교수님이 “연주 대단하다. 나 같으면 유튜브는 생각도 못 할 것 같은데.”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옆에서 듣고 병실로 올라 온 엄마는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펑펑 우셨다. 너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유튜브 할 마음이 드냐고. 나 정말 힘들게 참고 있는데, 너 눈 멀쩡하던 시절 사진만 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죽을 것 같다고.

불가피한 사고 소식을 전하는 영상을 끝으로,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업로드를 중단시켰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아차 싶기도 했다. 내가 살기 위해 했던 선택이,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게는 아픈 선택이었나 싶어서. 여전히 나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싶어서. 마음이 힘들고 복잡했다. 그래도 여전히 이걸 해야겠다는 내 생각과 결심은 변함이 없어서.

나는 많은 사람이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줄이고 싶었다. 의사도 가끔 실수하는 인간 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몸에 나쁘다는 술도, 야식도 먹고, 때론 후회하고 때론 행복해하는 그런 보통 인간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내가 진료실 안에서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형식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건강검진 문진표에 체크된 생활 습관 항목을 훑으며, “술 줄이세요. 운동하셔야겠네요.”라는 당연한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정작 나를 포함한 의사 본인들은, 술 무지 많이 먹고 운동은 바빠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삶은 본래 그렇게 교과서처럼 딱 떨어지게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모순적인 욕망을 갖고 삶을 꾸려 간다. 술도, 야식도 먹고 싶지만, 건강하고 날씬해지고 싶기도 하다. 각종 매스미디어나 소셜미디어에서는 ‘완벽한 삶’만이 옳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쳐 완벽해지는 것은 인간 다운 삶이 아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실존한다. 인간이 가진 힘과 가치는, 완전해지고 싶은 불가능한 욕망을 통해 불완전한 자신을 가꿔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완벽할 것이라고 보여지는 삶의 허점과 공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애쓰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술을 즐기고 매번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에서 터득한 보다 건강한 방법을 알려주기.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환상을 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인간이라는 따뜻한 안심을 심어주기.

그렇게, 나는 유튜브를 통해 휴머니즘을 담고 싶었다. 화려함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처럼, 물질 만능의 디지털 개인주의 시대에는 풍요 속 빈곤과 고립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완벽함을 선망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혐오하는 현대 인간들의 삶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현대사회의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고 교류하고 고백하는 휴머니즘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감사하게 엄마는 내 뜻을 이해해주셨고, 또 제일 좋아하는 ‘만두’가 출연한 덕분에 이제는 팬이 되었다. (자꾸 만두를 찍으라고 해서 오히려 지금은 살짝 귀찮을 정도다) 한쪽 눈이 감긴 상처 입은 얼굴을 보면, 나 자신도 아프다. 그렇지만 굳이 남기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가지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쪽 남은 눈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일 없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 모든 일에 100%는 없다. 

 

한쪽 눈을 감은, 실제의 나를 반영한 커버 이미지 (편집자 준희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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