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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 온 지는 70일, 퇴원해서 일상으로 돌아간 지는 정확히 50일 만이다. 구정 지나 복귀를 앞두고, 일상에 적응하는 연습을 하던 참이었다. 혼자 지내는 연습, 그리고 이전까지 해오던 기능을 회복하는 연습.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이 너무 앞섰던 건 아닐까 싶다. 이것 역시, 한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를 되찾으려는 욕망과 그로 인해 힘겨운 발악이었겠지만. 어제 새벽, 유난히 잠을 설치고 꿈에 쫓겼다. 싸우고 때리고 맞고 도망가는 모든 종류의 액션이 담긴 꿈이었는데, 일어나보니 식은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봤는데, 내 왼쪽 눈이 평소와 아주 달랐다. 지저분한 누런 찌꺼기가 들러붙어 있는데, 코안 쪽으로는로는 역한 .. 2023. 1. 14.
고프로 언박싱 (vs. 소니 ZV-1F) 공교롭게도 고프로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완성되기 1시간 전, 나는 고프로를 팔려고 당X마켓에 올려둔 참이었다. 작년 10월경, (액티비티) 유튜버를 해보겠다는 큰 꿈을 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고프로를 주문했다. 결제-주문-배송-도착-개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내시경실 모두가 알 정도로 나는 신나서 자랑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프로는 1~2번의 시범 촬영을 끝으로, 주인이 사고로 눈을 잃으며 그 쓸모가 없어졌다. 목적성을 잃은 그 물건은, 방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서는 눈에 밟힐 때마다 내 마음을 쓰리고, 또 허전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한때 큰 애착과 기대를 했지만, 상황이 바뀌며 마음도 바뀌는 경험은 누구나 흔하게 해 보았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압박과,.. 2023. 1. 13.
마음처럼 안 되는 월요일 아침 왠지 모든 것이 마음처럼 안 되는 날이 있다. 주말의 여파로 아직 덜 풀린 몸과 계속 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월요일 아침이면 더 그렇다. 안락한 둥지에서 떠나는 도전을 시도했던 새해 첫 주, 아주 비장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부끄럽게도 울고 짜는 한 주로 보냈다. 하지만, 새로운 둥지에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연착륙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라 스스로 안위하며 새해 둘째 주를 맞이했다. 둘째 주부터는 조금씩 나의 기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수술 이후, 이리저리 상한 몸과 마음으로는 힘들었던 일들 말이다. 빠져나왔던 대화방에 초대가 되고, 모임에 참여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면서, 역시 나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약간의 안도와 또 한 움큼의 씁쓸함에 물든 채로, 나는 .. 2023. 1. 10.
나의 꿈 My dream 뇌나 목뼈가 다쳤더라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큰 사고 이후, 저는 마음속 깊은 곳에만 묻어 두었던 꿈들을 더는 미루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비록, 한쪽 눈을 잃으며 포기해야 했던 취미들도 있지만(ex. 바이크, 승마, 골프, 테니스), 여전히 계속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에(ex. 내시경, 독서, 글쓰기) 무척 감사합니다. 그래서 덤으로 얻은 [2회차 인생]은 보다 값진 일들로 채워보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본인의 꿈을 쪽지에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제가 써낸 꿈은 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는, 훌륭한 글이 전하는 감동과 따뜻한 영감을 품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제 꿈은 현실 세계에 적응하며 변호사, 과학자를 거쳐, 어떤 .. 2023. 1. 8.
장애인 등록 신청 (1) ‘장애 등록’은 영영 보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내 왼쪽 눈을 한 단계 더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외래 진료 때 교수님께 조심스레 혹시 장애 등급 진단서를 뗄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좌안 시력 장애 6급, 영구 시력 상실’이라고 적어주셨다. 씁쓸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글자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차이가 있는 받아들임이었다.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에 ‘시각 장애 등록’이라고 쳤다. 수많은 광고와 함께 블로그 들이 나온다. 도대체 이렇게 해서는, 장애로 활동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감이 안 온다. 그중 몇 개의 블로그를 읽어 보다가 포기하고, 병원에서 알아서 챙겨준 서류들과 신분증을 고이 챙겨서 집을 나선다. 거주지 소재의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일반.. 2023.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