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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7

짜증 Annoying 병원에만 가면 짜증 내고 싸우게 되는 일이 생긴다. 몸 상태를 평가할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이라 잔뜩 긴장해 있는 데다가, 이놈의 병원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게다가 길은 길대로 막히고, 주차는 왜 이리 어렵고, 외래 위치는 왜 이렇게 찾기 힘든지. 진료가 끝나고는 ‘내가 잘 알아들었나’ 혹은 ‘꼭 이건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는 미심쩍은 불안함과 아쉬움이 남아 내 머리는 온통 복잡하다. 마치 그동안 치른 시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랄까. 틈새를 비집고 보호자는 자꾸 나를 재촉하거나, 혹은 어디론가 사라져 가뜩이나 힘든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든다. 어디론가 흩어지고 사라지는 보호자를 양손에 꼭 붙잡고, 수납대에 번호를 찍으려는데, 양팔에 외투와 가방 하나씩을 걸치고 있자니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 2023. 1. 30.
연휴 Holiday 연휴 전체를 홀로 입원한 채 보냈다. 어렵게 와준 가족과 친구들도 얼굴 잠깐 보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다. 워낙 긴 연휴라 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도 많지 않았다. 명절 연휴 기간, 당직 의사로 병원을 지킨 적은 있어도, 환자로 남아 있던 적은 처음이라 이 고요하고 황량한 분위기가 생소하다. 마치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온 듯싶다. 수술 부위 감염으로 재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많은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명절 연휴 끝나고 계획했던 나의 복귀, 일, 그리고 앞으로의 삶까지도. 엄마도 두 번째 입원은 첫 번째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든 것 같다고 하셨다. 마치 눈물 콧물 삼켜가며 산을 오르다, 정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온 것 같았다. 무릎을 털고 일어나긴 했는데, 눈앞이 온통 흐려, 정.. 2023. 1. 24.
함께 Together 예기치 못했던 합병증으로 재입원을 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많이 약해졌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당장의 모호한 운명에, 인간으로서 무력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닳고 닳아 연약한 내면이 드러나 보이는 순간, 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원래 강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인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그중에도 자기 확신의 결핍과 끝없는 존재 증명 욕구에 시달리는, 그저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들 앞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한계, 나의 한계는 온통 하찮고 허무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약한 인간을 일으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또 다른 인간이다. 생각할 겨를 없이 닥쳐온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재미를, 그리고 가능성을 다.. 2023. 1. 20.
고프로 언박싱 (vs. 소니 ZV-1F) 공교롭게도 고프로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완성되기 1시간 전, 나는 고프로를 팔려고 당X마켓에 올려둔 참이었다. 작년 10월경, (액티비티) 유튜버를 해보겠다는 큰 꿈을 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고프로를 주문했다. 결제-주문-배송-도착-개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내시경실 모두가 알 정도로 나는 신나서 자랑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프로는 1~2번의 시범 촬영을 끝으로, 주인이 사고로 눈을 잃으며 그 쓸모가 없어졌다. 목적성을 잃은 그 물건은, 방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서는 눈에 밟힐 때마다 내 마음을 쓰리고, 또 허전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한때 큰 애착과 기대를 했지만, 상황이 바뀌며 마음도 바뀌는 경험은 누구나 흔하게 해 보았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압박과,.. 2023. 1. 13.
마음처럼 안 되는 월요일 아침 왠지 모든 것이 마음처럼 안 되는 날이 있다. 주말의 여파로 아직 덜 풀린 몸과 계속 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월요일 아침이면 더 그렇다. 안락한 둥지에서 떠나는 도전을 시도했던 새해 첫 주, 아주 비장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부끄럽게도 울고 짜는 한 주로 보냈다. 하지만, 새로운 둥지에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연착륙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라 스스로 안위하며 새해 둘째 주를 맞이했다. 둘째 주부터는 조금씩 나의 기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수술 이후, 이리저리 상한 몸과 마음으로는 힘들었던 일들 말이다. 빠져나왔던 대화방에 초대가 되고, 모임에 참여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면서, 역시 나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약간의 안도와 또 한 움큼의 씁쓸함에 물든 채로, 나는 .. 2023.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