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4 회전목마 Merry-go-round 다치고 빛을 잃은 눈이 결국 피고름까지 쏟아내고 나서야, 그래서 결국은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나서야, 주인은 정신을 차린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거늘, 자꾸 스스로를 몰고 가는 버릇 때문에 상처는 결국 덧나고 말았다. 내성균이 자라서, 현존하는 항생제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도 없었다. 결국 코뼈를 뚫고, 고여 있는 고름이 흘러 나갈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부서진 안와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금속 임플란트 안쪽으로 고름이 차 있는 상황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외부 물질을 빼고 깨끗하게 씻은 뒤, 새로운 임플란트를 넣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지지하던 부위가 워낙 넓다 보니, 빼버리면 얼굴 형태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어 택한 차선책이었다. 제발 그다음의 경우.. 2023. 10. 5. 삶 Life, 아름다운 무기 지독하게 치료 받았다. 거짓말 안 하고 왕복 3시간, 막힐 땐 편도 3시간 까지 걸리는 거리로,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처음 한 달은 토일 가리지 않고 주 7일을 다녔고, 근무와 병행하면서는 그나마 주 5-6일로 줄여 다녔다. 체력이 약해지고 한 눈 운전이 서툰 나를, 부모님과 동생이 번갈아 태워 다녔다. 1시간 반-2시간 남짓 걸리는 치료시간과 왕복 소요되는 3-4시간을 합치면 하루를 통으로 비워야 했다. 가족들은 시간과 기회 비용을 기꺼이 감내해 주었다. 경치도 좋고 운동도 되니 좋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을 덜어주려 하는 말인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모든 것이 찐사랑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극한 희생과 헌신의 과정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거의 모든 끼니는 차에서 해결했다. 나 .. 2023. 5. 2. 정보 Information 피로하다. 넘쳐흐르는 정보들 속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는 것이.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들을 분류하고, 또 다른 이들이 건네준 정보들을 주워 끼워 넣는 일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가장 나아 보이는 옵션을 선택하고 또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너무나 피로하다. 최선을 선택하기는 항상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은 결과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자기만족을 더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안고, 나는 정보의 홍수에 잠겨 떠다니는 떠돌이가 되어 버린다. 떠돌다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고 가짠지 구분하는 일에도 지쳐 버렸다. 병원과 의사를 고르는 일에 지쳐있다. 얼굴 안쪽 뼈가 꽤 많이 부스러져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형태를 지탱하.. 2023. 1. 26. 청년 정치대학원에 대한 단상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등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2020년 의료계 파업. 당시 전공의 단체의 리더로서 ‘옳은 의료’와 ‘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거대한 폭풍에 대항해 파업을 진두지휘했던 경험은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이고 정치적인 파업이라고 하기엔,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는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며칠 되지도 않는 소중한 휴가를 반납하며 집회에 참여했고, 더 이상 대한민국 의료가 왜곡되는 것을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용기로 사직서를 냈다. 의료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이 드신 교수님들께서 우리 대신 당직을 서셨고, 이에 젊은 후배들은 죄송함과 책임감을 더해 더 큰 진심으로 임했다. 2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다양한 해석과 평가들이 오가고 .. 2022. 12.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