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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4

바로 잡으려는 용기 12월이 되고 의안을 48시간 연속해서 끼고 적응하는 연습을 하면서, 눈의 염증이 심해져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또다시 좌절하게 됐었다. 쉰다는 어려운 결정을 한 뒤로 이제는 정말 다 괜찮아진 것 같은 자신만만한 느낌이 들던 시기 였다. 역시 자만한 인간은, 하늘이 가만 두지 않는 구나 싶었다. 앞으로 달려나가고 싶은 정신과, 이를 용납해주지 않는 육체가 서로를 잡아 끄는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고군분투가 버거워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다. 갑자기 인생에 닥친 이 모든 상황을 그 흔한 원망 하나 없이 삼켜냈는데, 자꾸만 앞을 가리는 문제들은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속이 꽉 막히고 체한 느낌이었다. 원래 인간 심리가 줬다 뺐으면 불안과 .. 2023. 12. 17.
초기성인기의 발달과제 올해를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지나기 위해 무의식과 내면을 열심히 파고드는 중이다. 정신분석, 심리검사, 상담 등을 다각도로 병행하는데 (과해..), 새롭게 아주 큰 깨달음들을 얻고 있다. 당장 내게 닥친 육체적인 위기들을 물리적으로 회복하고 해결해 가면서 (과연..), 정신적, 심리적 회복의 문제가 남았다.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살았던 초기성인기의 발달과제를 이제야 건드리는 중이다. 전문의 시험 공부 중 누나 생각나는 구절이라며, ‘초기 성인기의 세 가지 발달과제‘에 대한 교과서 캡쳐본을 보내온 승원이에게 따스한 동질감을 느낀다. 역시 또라이는 또라이를 알아보는가. 다른 인간들도 비슷한 고뇌와 고민를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치유와 나아감이 시작된다. 모른척 하고 넘어간다.. 2023. 12. 13.
수현이 우리는, 수현이가 눈을 다친 지 4년 째 되는 날, 처음 만났다. 심장 공부가 재밌어 인터벤션 전문 간호사가 된 수현이는, 4년 전 오늘, 응급 시술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술대를 정리하던 중, 납안경을 낀 눈을 차폐막에 부딪히는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최근 수현이는, 내가 다치고 복귀하며 SNS에 쓴 글을 읽고는, 본인이 느낀 감정과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먼저 겪어온 수현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자꾸 왼쪽 어깨를 이유 없이 세게 부딪히는지 (그저 내가 부주의한 줄로만 알았다) 왜 기존 관계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었는지 왜 이따금씩 어찌할 수 없는 깊은 무력감이 찾아오는지 우.. 2023. 10. 14.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 재혁은, 나의 한쪽 어깨와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한쪽 눈만 보이는 나는, 혹시나 걸음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며, 우리가 향하는 방향과 땅바닥을 번갈아 살피느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앞을 보면서도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나와 달리, 친구는 시각 외의 다양한 감각에 의지한 채 한껏 여유롭고 능숙하게 걷는다. 친구가 한쪽 눈씩 차례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난 뒤, 내내 마음 속에 머물렀던 질문이 떠오른다. 혹시나 실례일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왠지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기에 그랬다. 나는 친구에게, 한쪽 눈을 잃고 남은 한쪽 눈 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두렵지 않았다고. 그리.. 202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