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15 안압이 재진다!!! 안과 진료에 올 때마다 간단한 검사들을 한다. 진료 차트에는 좌안 LP (-) (Light perception, 즉 빛 감지 능력이 없는 상태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함)이라 적혀 있다. 아주 잘 보이게 쓰여 있지만 기계적으로 왼 눈을 가려보라는 검사자도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왼쪽 눈은 실명했어요. 불 비춰도 안 보여요.”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마음이 온통 다쳤었다. 안압을 잴 때는 더 난관이었다. 눈꺼풀도 감겨 있고 안구가 흐물흐물하니 측정이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내 안압을 잴 수 있었던 사람은, 단발머리를 한 솜씨 좋은 1년 차 전공의 선생님 한 명뿐이었다. 정상 안압은 10~21mmHg인데, 당시 열심히 눈꺼풀을 벌려 겨우 잰 왼쪽 안압은 2mmHg였다. 그 정도로 낮은 .. 2023. 5. 15. 절망과 희망 사이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 온 지는 70일, 퇴원해서 일상으로 돌아간 지는 정확히 50일 만이다. 구정 지나 복귀를 앞두고, 일상에 적응하는 연습을 하던 참이었다. 혼자 지내는 연습, 그리고 이전까지 해오던 기능을 회복하는 연습.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이 너무 앞섰던 건 아닐까 싶다. 이것 역시, 한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를 되찾으려는 욕망과 그로 인해 힘겨운 발악이었겠지만. 어제 새벽, 유난히 잠을 설치고 꿈에 쫓겼다. 싸우고 때리고 맞고 도망가는 모든 종류의 액션이 담긴 꿈이었는데, 일어나보니 식은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봤는데, 내 왼쪽 눈이 평소와 아주 달랐다. 지저분한 누런 찌꺼기가 들러붙어 있는데, 코안 쪽으로는로는 역한 .. 2023. 1. 14. 장애인 등록 신청 (1) ‘장애 등록’은 영영 보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내 왼쪽 눈을 한 단계 더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외래 진료 때 교수님께 조심스레 혹시 장애 등급 진단서를 뗄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좌안 시력 장애 6급, 영구 시력 상실’이라고 적어주셨다. 씁쓸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글자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차이가 있는 받아들임이었다.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에 ‘시각 장애 등록’이라고 쳤다. 수많은 광고와 함께 블로그 들이 나온다. 도대체 이렇게 해서는, 장애로 활동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감이 안 온다. 그중 몇 개의 블로그를 읽어 보다가 포기하고, 병원에서 알아서 챙겨준 서류들과 신분증을 고이 챙겨서 집을 나선다. 거주지 소재의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일반.. 2023. 1. 6. 본다는 것은 What is seeing?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쪽 눈을 잃게 되면서, 나는 ‘보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사고 이전에는 눈을 뜨고 빛과 사물을 보고, 글자를 읽는 등의 행위가 소중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보통의 경우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닥쳐오는 치열한 일상과 과제들에 눌려 있었을 뿐, ‘보는 행위’ 자체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눈을 다치기 이전, ‘보는 행위’는 내게 괴로운 숙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는 것은 곧 믿는 것’이란 오랜 구절이 있다. 나는 종종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내 눈으로 봐야 알겠어. 직접 보지 못하면 못 믿어.”라고 말하곤 했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 확인한 정보만을 현실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2022. 12. 28. 고통에 대한 회고록 2022.12.18 - [분류 전체보기] -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 가을, 11월 첫 주 주말이었습니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교수님들과 병원 대강당에서 세미나를 같이 듣고, 또 뒷정리를 함께 했던 기억만 뚜렷하게 남 playdang.com 사고 당일인 11월 6일 응급 안구 봉합술 (2.5시간), 11월 14일 유리체 절제술 (3시간), 11월 18일 다발성 안면부 골절 에 대한 재건술 (6.5시간) 까지 약 2주 동안 총 세 차례, 총합 12시간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마취에서 깨는 순간, 좌측 안면부와 두피 쪽으로 강렬하고 타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도의 통증이었고, 그 실체가 가늠이 .. 2022. 12. 2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