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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4

눈동자야, 너 참 예뻤었다.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외적 칭찬을 담기에 보편적인 ‘얼굴’ 이나 ‘눈’ 이 아닌, 구체적으로 ‘눈동자’였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절대적인 눈의 크기는 작은 편이었는데, 상대적인 눈동자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것 보다 커서 였을까. 어릴 때는 공포영화 ‘주온’에 나오는 토시오의 눈 같다고 할 정도로, 내 작은 두 눈은 까만 눈동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으쓱하면서 다시 한 번 내 눈동자를 들여다 보곤 했다. 화려하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선하고 깊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싶어 꽤 마음에 들었다. 간혹 거울 속 내 눈동자에 비친 또 다른 나를 쳐다보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거울을 볼 때 나는 눈동자를 기준 삼아 얼굴을 갸우뚱 하.. 2023. 2. 24.
대한민국 바이탈과 의사들이여 얼굴과 눈을 다쳐 전신 마취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 이후 회복하는 동안, ‘내과 전문의‘인 내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본과 실습 때 다 보고 배웠던 것이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내과 진료에 집중하면서 다른 지식은 흘러 나가도록 두었다. 보통 큰 병원에서는 내과가 입원 환자가 제일 많은 데다, 고령의 중환자들을 맡고 타 수술 과들을 백업하기에 ’내과는 의학의 꽃‘이라고 불린다. 힘든 만큼 자부심도 높기에 ‘내과 자부심 (aka 내부심)’에 똘똥 뭉쳐 버틴다. 간혹 협진 요청을 하는 타과에게 까다롭고 예민하게 굴기도 해서, ‘내썅 (aka 내과X년)'이란 별명이 붙기도 한다. 응급실로 실려와 수차례의 안구 및 얼굴 뼈 복원 등의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가 알지 .. 2023. 2. 13.
일기 Diary 다시 입원하게 되면서, 준비물로 방구석에 묵혀 있던 ‘5년 일기장’을 꺼내 왔다. 5년 전, 친구 @yuzu 의 추천으로 구입하게 된 5년 일기장이다. 친구는 5년 일기를 쓰면서, 매년 같은 날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또 무슨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왔는지 과정을 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2019년의 나는, 경험과 여행을 통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는 1년을 보낸 후, 힘들기로 유명한 내과 레지던트 입국을 앞둔 상태였다. 당시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삶의 질문은 ‘개인의 소소한 행복과 여유, 그리고 커리어의 성공과 성취가 공존할 수 있는가’ 였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사고를 하던 어린 나에게, 질문의 답변은 No였다. 인간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선택하는 과정이, 그 사람 인생의.. 2023. 1. 23.
생존 Survival 조각조각 나서 일부는 사라져 버린 내 얼굴 뼈. 안구 주변의 뼈들이 부서진 탓에, 그리고 코와 연결되는 점막 장벽들이 무너진 탓에, 내 좌측 얼굴과 코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균을 막을 재간이 없다. 30대의 나는 정맥 항생제의 도움으로 한 차례의 위기를 잘 넘어갔지만, 40대, 50대, 60대, 70대의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말은, 내가 앞으로 견디고 싸워야 할 대상이, 남은 한쪽 눈으로 보게 될 좁은 시야가 아닌, 언제 어디서 들이 닥칠지 모르는 세균들과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잔뜩 긴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삶. 감염 징후에 촉각을 세우고 너무 늦기 전에 알아채야 지킬 수 있는 삶, 앞으로 나에게는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30대에 생존.. 2023.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