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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4

멈춤의 미학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쉬기로 한 이후에도 나는 왜 그리 바쁘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한쪽 끝에서는 ‘욕망’이, 또 한쪽 끝에서는 ‘불안’이 나를 양 끝으로 찢어 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하고픈 것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많아서 파묻힐 정도로 과한 욕심은 독이리라. 진짜 쉬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피눈물 때문은 아니고 사실은 피똥 때문이었다. (좀 부끄럽지만 뭐ㅋ) 수술 후 4일 째 되던 날,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 데굴데굴 굴렀다. 정신을 잃을 정도라 화장실에 수건을 대고 쓰러져 있었다. 그러더니 시뻘건 혈변이 똑똑 나왔다. 소화기내과 의사로서 수도없이 봐왔던 환자들 사진과 똑같이.. 갑작스럽고 극심한 LLQ (left lower quadrant, 배를 4사분면으로 나.. 2023. 11. 20.
애플워치 8 (Apple watch series 8) 애플워치를 선물받았다. 오랜 친구지만, 오랫 동안 못 보고 지낸 친구가 선물해줬다. 사고 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눈 통화에서, 친구는 오른쪽 눈의 녹내장으로 실명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마음이 힘들다 했다. 나는 친구에게 꼭 꼭 건강 관리 잘 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꼭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 신신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갑작스런 사고로 상황이 뒤바뀌며, 난데 없이 내가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 실명이란 것이 우리 나이 대에 흔한 일은 아닌데, 우리(친구와 나)에겐 어쩌다보니 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친구한테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어렵고 고민되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 친구가 실명이란 어두운 그림자를 자기 것처럼 받아들일까 봐. 그래서 더욱 울적하거나 불안해 할까봐. 고민.. 2023. 4. 23.
안약 엄마의 핸드폰은 아침 8시와 저녁 6시에 두 번 알람이 울린다. ‘연주 안약 넣어주는 시간’이다. 다친 왼쪽 눈은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해, 반대쪽 눈은 안압이 높아지며 기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안약을 잘 넣어야 한다. 입원 중에는 그 횟수가 네 번이었다가, 세 번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두 번으로 줄었을 때 퇴원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 눈을 스스로 뜨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퇴원 후 한참이 지나도록 내 눈에 대신 안약을 넣어주었다. 안약 넣는 것은 엄마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아침 8시와 저녁 6시 알람이 울리면, 면봉으로 조심스레 내 눈을 벌려서 안약을 떨어뜨리고, 내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언젠가 딱 한 번, 엄마가 왼쪽에 넣어야 할 약을 헷갈려 오른쪽에 .. 2023. 1. 3.
사고 소식 알리기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 이후, 이를 주변에 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아끼는 누군가는 “눈을? 눈을 다쳤다고? 그래서 어떻다고?”라고 반복이다. 끝내 ‘실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오열했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울먹이는 듯 한참을 말을 못 하기도 했다. 이토록, 한 사람의 인생에는, 참 믿기 어렵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사건 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조차도 믿기 힘든 이 갑작스러운 불행을, 타인에게는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했었다. 일단은 나 스스로 이 불행을 온전히 삼키고 견딜 수 있어야 했고, 그리고 나서는 겹겹이 쌓여있던 약속과 만남 들에 나의 갑작스러운 불참 사유를 전해야 했다. 다른 이들의 삶이 나의 갑작스러운 불행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엉키.. 202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