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버렸다.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았던, 어쩌면 마주하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 둔 현실이 설움과 함께 터져 나왔다. 엄마 아빠가 눈이 두 개이고, 나는 눈이 한 개가 되어 버린 뾰족한 현실은 그야말로 차갑고 앙상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마치 지금에서야 발견한 것처럼, 나는 날카로운 끝을 사정없이 휘둘러 부모의 마음을 찌른다. 숨겨 뒀던 폭군의 모습이 드러나는 광경이다.
부모님의 시선은 미래를 향했고, 내 것은 현재에 머물렀다. 적어도 과거에 묶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큰 다행이었다. 부모님은 미래의 내가 차별받지 않기를 바랬고, 나는 현재의 내가 행복하길 바랬다. 사고를 겪은 당사자의 마음은, 지금, 현재, 여기 있는 나를 지키고자 애쓰는데, 엎어져 있는 딸을 외면하고 자꾸 저 멀리 불확실한 곳을 쳐다보는 부모가 야속했다. 다 알겠는데,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물러 꼼짝 못하고 있다고, 내면의 소리가 나를 꽝꽝 두드렸다.
미래를 향한 부모의 우려와 시선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 이었으리라. 한 눈을 잃은 자식이 전문성을 갖춰, 온통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를, 본인들이 더는 지켜줄 수 없는 미래의 세상에서도 딸이 떳떳하게 건사 했으면 하는 바램에는 결국은 부모의 깊은 아픔과 간절함이 담겨있었으리라. 부모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마치 유치원생 소풍 가방을 싸듯 이것 저것 담아주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으리라.
하지만 현재의 나는, 또 다시 의무와 책임이 가득한 세상에서 버틸 여력이 없었다. 목숨을 잃을 뻔 한 절벽 상황에서 깨달은 것은, 지금까지 오늘 참아 내일 하리라고 미뤄 왔던 수많은 희망 사항들이, 한순간에 0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내일을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오늘들은, 모든 것을 멈춰버리게끔 만드는 파괴적인 타력이 있었고, 이는 어쩌면 과거의 내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에 서투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는, 같은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의 번지르르한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일은 당연해보이지만, 어찌 보면 아주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스탠포드 대학의 유명한 심리학자 월터 미쉘 (Walter Mischel)의 사탕실험에 따르면, 사탕이 주어지자마자 바로 먹은 그룹의 아이들보다, 20분 기다려 마쉬멜로우까지 받은 참을성 높은 그룹의 아이들이 뛰어난 사회적 성취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후자 그룹의 아이들이 그만큼 더 행복했냐는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현재의 행복을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삶에 일종의 주기가 있듯이, ‘행복 러쉬’는 행복이 고갈 되었음 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치고 올라온다. 매끄럽게 모든 과정을 완수하고 아름다운 내일을 그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황폐한 나를 몰아채찍질하여 내일의 당근을 향해 달리게 하는 행위는, 오히려 낭떠러지로 향하는 지름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행복하기를, 선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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