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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꼭 지워야 할 나쁜 기억에 대하여

by 윙크의사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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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memories erasers

부모님이 여행을 다녀오시며 내 손바닥 반 만한 지우개를 기념품으로 사오셨다. 연필을 잡아본 기억도 까마득한데, 지우개라니..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왜? 라고 생각하던 찰나, 큼지막한 지우개에 적힌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띈다. ‘Bad memories eraser’

내 시선을 눈치챈 엄마는,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아니, 가이드가 이거 많이 사간다길래.. 나쁜 기억을 다 지워주는 지우개래.’ 다친 딸을 남겨둔 탓에, 여행 기간동안 종종 아프고 불편했을 부모님의 마음이다.  

커다란 지우개를 손에 들고 곰곰이 생각한다. 꼭 지워야 할 나쁜 기억이 뭐가 있을까? 일단, 끔찍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 기억은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삭제 되었다. 이후의 기억들은, 아프고 힘들었을 지 언정, 모두가 의미가 있었다. 곁에 있는 가족 덕분에, 혹은 마음 써준 분들 덕분에. 그리고 무엇보다, 꿋꿋이 이겨내고 우뚝 선 스스로 덕분에.

지우개의 본질과 기능을 생각한다. 지우개는 물리적인 마찰을 통해, 글씨가 쓰인 종이 한 껍질을 벗겨내 이를 없앤다. 때문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를,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우면, 여전히 많은 흔적이 남는다. 글씨 자국도 남고, 벗겨진 종이 흔적도 남고, 지우개 똥도 남는다. 새로운 글씨를 적으려 해도, 기존의 자국과 겹쳐 깨끗 하지가 않다.

인생의 새로운 글씨를 써내려 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행복한 기억들 Happy memories로 남은 인생을 온통 채우려면? 역시나, 깨끗한 종이 한 페이지를 넘겨 새롭게 써 나가는 것이 최고다. 괜히 모든 것을 지우고 고치려다가는, 나도, 지우개도, 종이도 모두 닳아 없어지는 수가 있다. 세상에 꼭 지워야 할 나쁜 기억은 없다. 그저, 한 페이지 전의, 지나치는 기억이 있을 뿐.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울, 수많은 새로운 페이지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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