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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의사 일기

세상을 떠난 친구

by 윙크의사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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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를 사 준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랜 만에 5km 러닝을 완주하고, 깔깔 거리며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가던 찰나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카톡을 열어보니, 너무나 익숙한 이름의 본인 부고 메시지였다.

 

그대로 멈춰서 한참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친구가 선물해 준 애플워치를 차고 한강 변을 뛴 그 날, 내가 건강해지길 바랬던, 몸도 마음도 컸던 그 친구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가 다친 것을 걱정하며,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꼭 보자고 하고 찾아와서는, 피곤한 티를 내는 내 옆에서 자정이 넘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던 천진난만한 친구. 마치 보물상자라도 연 어린아이 마냥 기쁜 표정을 짓던 그에게는, 보잘 것 없던 시절의 우리 모습이 아주 소중하고 귀한 보물이었나보다.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는, 온갖 길고 긴 이야기를 전하던 친구는, 언제나 말이 많지 미안해하면서도, 내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해맑던 그 목소리를 억지로 끊었던, 혹은 끊기가 미안해 받지도 못했던 수많은 전화들이, 이제는 자꾸 떠올라 나의 마음을 자꾸 뚝뚝 끊기게 만든다. 

 

친구의 부고 소식을 믿을 수 없어 한참이나 멍했던 나는, 아주 모순적이게도, 그날의 행복했던 러닝 인증샷을 SNS에 올린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너무 화려하고 괜찮은 삶만 올라온다고. 가까운 친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사고 후에 불행을 괜찮다고 전시 하는 네가 이상하다고.

 

당시에는 나도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몰랐었는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멀리에 있어 당장은 볼 수 없는, 한때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보다. 

 

나 괜찮다고. 힘든 일을 겪었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나 여기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 보고 있냐고. 앞으로 더 괜찮게 살 수 있을 거라고. 

 

-

 

비록 내가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주진 못했지만,

내게 나눠 주었던 마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낼거라고.

끝까지 지독히 살아남아서, 당신 몫까지 건강하게 살아 남아서 

당신이 하늘에서 보기에,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보겠다고.

 

-

 

그러니 걱정 말고 이제 마음 편히 지내라고.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사랑했던 모두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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