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끝맺음과 새로운 역할
2년 간의 소화기내과 펠로우 수련 과정이 끝이 났다. 얼굴뼈가 깨지고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겪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힘겹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섯 번 반복된 전신마취 수술과 세 번의 치열한 복귀, 두번의 거절 끝에 장애인으로 등록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참 고집스럽고 독한 과정이었다. 1년간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2년차로 남아 후배들과 또다른 1년을 보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택에 책임지며,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이었다. 그 끝이 어떨지 마음 속으로 백번도 넘게 그렸지만, 지금과 같은 혼돈은 예상하지 못했다. 남겨진 이도, 떠나야 하는 이도, 못내 아쉽고 참담하다. ‘이제 어디로 가니?’ 라는 질문에, 곧 다시 환자복을..
2024. 3. 1.
나의 슬픈 최선, 필수의료
“엄마, 엄마 나 보여?" 중환자실 면회를 온, 내 또래의 딸 보호자가 의식이 혼미해진 환자를 소리쳐 흔들며 부른다. “지..혜야..” ‘엄마’라는 소리를 들은 환자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황달로 노래진 눈을 딸에게 겨우 맞춘다. 수염이 덥수룩 한 남편 보호자의 눈시울이 동시에 벌개진다. 오랜 간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내가 1월에 수술 받으러 가기 전까지는, 혼자 입원해 있던 환자이었다. 51세의 나이에, 진행성 간암으로 마땅한 치료를 찾지 못했고 경제적 상황도 좋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새, 상태가 손쓸 수 없이 나빠졌고, 콩팥 기능마저 악화 되며 3일 전 중환자실로 이실했다. 보통의 병원 상황이었다면, 적극적인 투석과 삽관 등의 치료로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설득 했을 텐데, 그럴..
2024.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