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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14

아쉬운 끝맺음과 새로운 역할 2년 간의 소화기내과 펠로우 수련 과정이 끝이 났다. 얼굴뼈가 깨지고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겪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힘겹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섯 번 반복된 전신마취 수술과 세 번의 치열한 복귀, 두번의 거절 끝에 장애인으로 등록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참 고집스럽고 독한 과정이었다. 1년간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2년차로 남아 후배들과 또다른 1년을 보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택에 책임지며,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이었다. 그 끝이 어떨지 마음 속으로 백번도 넘게 그렸지만, 지금과 같은 혼돈은 예상하지 못했다. 남겨진 이도, 떠나야 하는 이도, 못내 아쉽고 참담하다. ‘이제 어디로 가니?’ 라는 질문에, 곧 다시 환자복을.. 2024. 3. 1.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왜 그 때 그렇게 울음이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들었던 병원에서 전반기 인턴을 마치고, 진료실에 감사 편지를 전하러 갔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바쁘게 환자들이 밀려오는 진료실에서 울음이 터진 절 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몰라 하시며 건네주신 ‘핸디 선풍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안이 되었는지요. 외래 끝나고 연락할테니, 일단 얼굴에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사랑을 모두 느꼈습니다. 의사 면허를 따고,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의사로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의무원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에도, 선생님께서는 인턴 의사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진심이 담긴 관심과 애정을 담아주셨습니다. 힘든 일은 없는지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모습에, 모든 것이.. 2024. 3. 1.
나의 슬픈 최선, 필수의료 “엄마, 엄마 나 보여?" 중환자실 면회를 온, 내 또래의 딸 보호자가 의식이 혼미해진 환자를 소리쳐 흔들며 부른다. “지..혜야..” ‘엄마’라는 소리를 들은 환자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황달로 노래진 눈을 딸에게 겨우 맞춘다. 수염이 덥수룩 한 남편 보호자의 눈시울이 동시에 벌개진다. 오랜 간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내가 1월에 수술 받으러 가기 전까지는, 혼자 입원해 있던 환자이었다. 51세의 나이에, 진행성 간암으로 마땅한 치료를 찾지 못했고 경제적 상황도 좋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새, 상태가 손쓸 수 없이 나빠졌고, 콩팥 기능마저 악화 되며 3일 전 중환자실로 이실했다. 보통의 병원 상황이었다면, 적극적인 투석과 삽관 등의 치료로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설득 했을 텐데, 그럴.. 2024. 2. 27.
벌써 일년 2023.11.6. 다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왠지 인생에서 기념(?) 아닌 기억해야 할 날짜가 하루 더 늘어난 기분이다. 막상 그 날이 되니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가 버린다. 삼십여년 두쪽 눈으로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한쪽 눈으로 쌓아갈 삶들이 차곡차곡 앞에 남았다. 1년 전을 돌이켜보면, 저 컴컴한 병원 건물 병실 한 칸에서 온갖 감정을 거쳤다. 몸에 걸친 얇은 환자복과 팔을 칭칭 감은 수액줄이 한편으로는 날 가둬두는 죄수복과 수갑 같았다. 창문 너머 코앞에 보이던 5분 거리의 자취방은, 당시에는 안개 속에 갇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지금 서 있는 병원 밖 삶도 치열하긴 매 한가지지만, 저 안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터무니 없다. 1년 간 안팎으로 참 고생하며 생존하고 성장해왔다.. 2023. 11. 12.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이 간호사아아아아아!!!!! 아파죽겠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진통제를 안 줘어!!!?” 수술 받기 위해 내가 입원한 병실은 정형외과 병동이었고, 내 맞은편의 환자는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무릎 관절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된 할머니였다. “죄송해요. 환자분,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저희가 다섯 번이나 연락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직 답장이 없으세요 ㅠㅠ 지금 안 좋은 환자가 생긴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연락해 볼게요.”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어!!!! 아이고 아파 죽네. “ 병원에서 무척 흔하게 생기는 상황이지만, 병실에서의 씨름을 눈앞에서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간호사 입장도, 환자 입장도 너무 딱했다. 점점 늘어나는 입원 환자 수에 비해, 값싼 인력인 수련의 몇이 당직을 서는 종합병원은.. 2023.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