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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13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왜 그 때 그렇게 울음이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들었던 병원에서 전반기 인턴을 마치고, 진료실에 감사 편지를 전하러 갔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바쁘게 환자들이 밀려오는 진료실에서 울음이 터진 절 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몰라 하시며 건네주신 ‘핸디 선풍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안이 되었는지요. 외래 끝나고 연락할테니, 일단 얼굴에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사랑을 모두 느꼈습니다. 의사 면허를 따고,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의사로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의무원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에도, 선생님께서는 인턴 의사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진심이 담긴 관심과 애정을 담아주셨습니다. 힘든 일은 없는지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모습에, 모든 것이.. 2024. 3. 1.
나의 슬픈 최선, 필수의료 “엄마, 엄마 나 보여?" 중환자실 면회를 온, 내 또래의 딸 보호자가 의식이 혼미해진 환자를 소리쳐 흔들며 부른다. “지..혜야..” ‘엄마’라는 소리를 들은 환자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황달로 노래진 눈을 딸에게 겨우 맞춘다. 수염이 덥수룩 한 남편 보호자의 눈시울이 동시에 벌개진다. 오랜 간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내가 1월에 수술 받으러 가기 전까지는, 혼자 입원해 있던 환자이었다. 51세의 나이에, 진행성 간암으로 마땅한 치료를 찾지 못했고 경제적 상황도 좋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새, 상태가 손쓸 수 없이 나빠졌고, 콩팥 기능마저 악화 되며 3일 전 중환자실로 이실했다. 보통의 병원 상황이었다면, 적극적인 투석과 삽관 등의 치료로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설득 했을 텐데, 그럴.. 2024. 2. 27.
의사가 된 과학 영재의 배신 공대 합격자의 의대 이탈에 대한 뉴스가 연일 화제였다. 의대 정원 확대 이슈와 의사 과학자 양성에 대한 토론도 계속된다. 자격이 될지 모르겠지만, 욕먹을 각오와 함께 내가 학창 시절 느낀 바를 꺼낸다. 소개부터 하자면, 나는 일종의 배신자다. 중학교 때 두 군데의 과학영재원에 합격했고, 당시 대한민국 유일한 영재고였던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카이스트 (KAIST) 생명과학과를 졸업 했으나, 후배의 죽음을 계기로, 경로를 틀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내과 의사가 되었다. -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가득해 늘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나는, 과학과 생명 활동에 관한 공부가 무척 재미있었다. 영재교육원에서 실험을 구상하고 창의적인 사고 회로를 돌리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 2024. 1. 25.
나는 나쁜 의사인가 (내과 전공의 3년차 시절 작성한 글입니다) 2주일 전, 우리 파트 1년차 선생님이 내과 수련을 포기했다. 평소 근면성실하고 열심이던 분이었는데, 아마 내과 의사로서 늘 맞닥뜨리게 되는 중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원인 이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만두게 한 원인을 분석 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첫 주는 행정상 휴가 처리를 한 채 다들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그렇다고 따로 연락해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파트 시니어 로서 할 일은, 그가 맡던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공백을 메꿔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주가 흘러갔다. 2년차 휴가 백을 포함하면 3주 째 차트를 잡고 있다. 그간 벌.. 2023. 12. 24.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해 “서연주! , 할 것 없으면 같이 회진이나 돌자.” 오후 내시경이 끝나 무료하게 앉아 있던 내게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1년차 펠로우 말에는 다쳐서 환자로 입원해 있느라, 2년차 펠로우는 병동 백을 보지 않고 내시경만 하기에, 병동 환자를 본 지가 한참이나 된 것을 알고 하시는 말씀이다. “의사는 환자 너무 오래 안 보면 감 떨어진다.” “네? 네네.” 갑작스런 오더에 정신 없이 대답을 마치고, 명단 뽑을 새도 없어 노트와 펜 하나를 챙겨들고 급히 교수님을 따라 나선다. 꿈에서도 생각나던 중환자실 비밀번호를 까먹어 충격받을 새도 없이 “꾹꾹꾹꾹 (4670)” 버튼을 스스로 누르고 나를 이끄시는 노교수님. 환자와 말씨름을 하기도 하고, 또 걱정 말라 안심시켜 주기도 하면서 능숙하게 회진을 도시는 교수님의 모.. 2023. 6. 25.